유리 알론의 시스템 생물학 강의 첫 시간이다. 알론은 생물학을 분자 목록으로 외우는 대신, 공학자가 회로도를 읽듯 세포를 읽자고 제안하며 강의를 연다. 이 1강은 그 관점에 필요한 기본 어휘, 곧 전사 네트워크와 입력 함수와 동역학을 세운다.
강의 페이지와 연습문제: weizmann.ac.il/mcb/alon/courses/systems-biology-2018. 강의는 알론의 책 『An Introduction to Systems Biology』(2판)를 따라간다.
세포를 회로처럼 읽기
생물학의 오랜 작업은 부품 목록을 만드는 일이었다. 어떤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고, 무엇이 무엇과 결합하는가. 시스템 생물학은 질문을 바꾼다. 이 부품들이 이어져 만드는 회로가 무엇을 계산하며, 왜 하필 그런 배선인가.
알론의 답은 세 가지 설계 원리로 요약된다. 세포의 배선에는 몇 가지 회로 패턴이 자꾸 되풀이되고(네트워크 모티프), 그 회로들은 잡음과 요동 속에서도 제 기능을 지키며(강건성), 진화가 다듬은 만큼 어떤 목표에 대해 거의 최적으로 맞춰져 있다(최적성). 이 시리즈가 강의를 따라 하나씩 짚을 주제들이다.
이 관점이 힘을 가지려면 세포를 회로로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첫 벽돌이 전사 네트워크다.
전사 네트워크
세포는 환경을 읽고 반응한다. 당이 생기면 그 당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고, 손상이 오면 복구 단백질을 만든다. 이 반응의 상당 부분은 유전자를 켜고 끄는 일로 이뤄진다.
그 스위치를 쥔 것이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라는 특별한 단백질이다. 전사인자는 DNA의 정해진 자리에 달라붙어 근처 유전자의 전사 속도를 바꾼다. 속도를 올리면 활성자(activator), 내리면 억제자(repressor)다.
한 가지 구별이 중요하다. 전사인자는 늘 세포 안에 있어도 대개는 잠들어 있다. 환경 신호(작은 분자가 달라붙거나 인산기가 붙는 식의 변형)가 전사인자를 깨워 활성 상태로 바꾼다. 그래서 유전자를 실제로 움직이는 양은 전사인자의 총량이 아니라, 그중 활성화된 농도 $X^*$다.
이 그림을 통째로 그래프로 그린 것이 전사 네트워크다. 노드는 유전자, 화살표는 “이 유전자의 산물이 저 유전자를 조절한다"는 관계다. 대장균 한 마리 안에도 수천 개의 유전자와 수백 개의 전사인자가 있고, 이들이 이런 화살표로 엮여 하나의 거대한 회로를 이룬다.
입력 함수: 신호가 유전자를 켜는 방식
활성 전사인자 농도 $X^*$가 정해지면, 대상 유전자가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질지가 정해진다. 이 대응 관계를 입력 함수라 부른다.
가장 흔한 꼴이 힐 함수(Hill function)다. 활성자라면 이렇게 쓴다.
$$f(X^*) = \beta \, \frac{(X^*)^n}{K^n + (X^*)^n}$$농도가 낮을 땐 거의 0이다가, 문턱을 넘으면 최대 생성 속도 $\beta$로 포화한다. 여기서 두 상수가 회로의 성격을 정한다. $K$는 활성화 계수로, 생성이 절반에 이르는 문턱 농도다. $n$은 힐 계수로, 스위치가 얼마나 가파른지를 정한다. $n$이 1이면 완만한 곡선이고, $n$이 커질수록 $K$를 경계로 딱 끊기는 계단, 곧 켜짐과 꺼짐만 있는 논리 게이트에 가까워진다. 억제자는 부호가 뒤집혀, $X^*$가 커질수록 생성이 줄어든다.
아래 위젯에서 활성자와 억제자를 바꿔 보고, $K$로 문턱을, $n$으로 가파름을 움직여 보자. $n$을 키우면 곡선이 계단(논리 근사)으로 다가가는 게 보인다.
유전자의 동역학: 생성과 제거
입력 함수는 순간의 생성 속도를 알려줄 뿐이다. 단백질이 세포 안에 실제로 얼마나 쌓이는지는 시간을 따라가야 안다.
유전자가 켜져 단백질 $Y$가 일정한 속도 $\beta$로 만들어진다고 하자. 동시에 $Y$는 사라진다. 효소에 분해되기도 하고, 세포가 자라 둘로 갈라지면서 묽어지기도 한다. 이 제거를 한 속도 상수 $\alpha$로 묶으면 동역학은 이렇게 된다.
$$\frac{dY}{dt} = \beta - \alpha Y$$생성과 제거가 균형을 이루면 농도가 더는 변하지 않는다. 그 정상상태 농도는 $Y_{st} = \beta/\alpha$다. 생성을 키우거나 제거를 늦추면 더 높은 곳에서 균형이 잡힌다.
응답 시간: 1강의 핵심 결과
빈 상태에서 유전자를 켜면 $Y$는 정상상태를 향해 차오른다.
$$Y(t) = Y_{st}\left(1 - e^{-\alpha t}\right)$$여기서 알론이 힘주어 짚는 결과가 나온다. 이 반응이 얼마나 빠른지, 곧 정상상태의 절반에 이르는 응답 시간은
$$T_{1/2} = \frac{\ln 2}{\alpha}$$오직 제거 속도 $\alpha$로만 정해진다. 생성 속도 $\beta$는 얼마나 높이 차오르는지(도달 높이)만 바꿀 뿐, 얼마나 빨리 차오르는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더 빠르게 반응하고 싶으면 더 세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더 빨리 없애야 한다는, 조금 뒤집힌 결론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많은 단백질은 스스로 잘 분해되지 않아서, 실질적인 제거는 거의 전부 세포 분열에 의한 묽어짐으로 일어난다. 그러면 $\alpha$는 세포 한 세대 시간으로 정해지고, 유전자의 반응 시간도 대략 한 세대에 묶인다. 세포가 그보다 빠른 반응을 원한다면, 이 느린 기본값을 깨는 특별한 회로가 필요하다. 다음 강의에서 볼 자기조절이 바로 그런 장치다.
아래 위젯에서 $\beta$와 $\alpha$를 움직여 보자. $\beta$를 키우면 곡선의 천장만 올라가고 반쯤 차는 시점은 그대로인 반면, $\alpha$를 키우면 천장은 내려가도 반응은 빨라진다.
시간 척도의 분리
앞에서 입력 함수와 동역학을 따로 다룬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포 안의 사건들은 저마다 시간 척도가 다르다. 신호가 전사인자를 깨우고 전사인자가 DNA에 붙는 일은 초 단위로 끝나지만, 전사와 번역으로 단백질이 쌓이는 데는 분이 걸리고, 그 단백질이 사라지는 데는 다시 한 세대가 걸린다.
이 차이 덕분에 근사를 쓸 수 있다. 단백질이 쌓이는 느린 과정을 볼 때, 전사인자가 켜지고 꺼지는 빠른 과정은 사실상 순간으로 취급해도 된다. 전사 네트워크는 이 느린 층, 곧 세포가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층이다. 회로의 논리를 이 층에서 읽는 것이 시스템 생물학의 출발점이다.
다음으로
여기까지가 세포를 회로로 읽는 기본 어휘다. 노드와 화살표(전사 네트워크), 신호를 생성으로 옮기는 입력 함수, 그리고 생성과 제거가 만드는 동역학과 응답 시간. 이 도구를 손에 쥐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화살표들은 아무렇게나 이어져 있을까, 아니면 자꾸 되풀이되는 배선 패턴이 있을까. 다음 강의부터 그 패턴, 곧 네트워크 모티프를 하나씩 뜯어본다.